데지레 2안네마리 셀린코 지음, 고정아 옮김 / 서커스
역사의 전면에 있지 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 시대의 단면을 비춰 보려 한 역사소설. 이런 소설이 희귀한 것도 아니고 금방이라도 몇 편의 제목을 댈 수 있지만,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든 이 두 권짜리 소설은 특별했다. 어떤 식으로 특별했냐고 하면... "월등하게 재미있었다".
접습니다책띠를 살펴보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 데지레는 나폴레옹의 약혼자였다는 사실을 가장 크게 부각시키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녀의 눈에 가장 많이 비치는 것은 나폴레옹과 보나파르트 일가, 그 주변의 프랑스 역사의 흐름이다. 하지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치고는 그 무대가 궁정 내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상당한 스케일을 보여주는데, 이는 작가가 글을 잘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실제 인물인 외제니 데지레 클라리의 삶이 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수성가한 실크 포목점 주인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언니를 나폴레옹의 형인 조제프에게 소개하게 되어 가족 전체가 보나파르트 가와 엮이게 되고, 그 자신도 나폴레옹과 약혼했다가, 이후에 그의 부하인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와 결혼하며, 남편이 스웨덴 왕국의 왕세자로 지명을 받자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스웨덴 왕실의 일원이 된다. 중산층 계급의 아가씨가 결국 한 나라의 왕비가 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이미 이 소설은 많은 재미를 주며, 그 과정에 놓인 수많은 굴곡들을 전적으로 "역사적 상황 탓"이나 "개인의 운명 탓" 중 어느 한 쪽으로 돌리지 않는 꽤 균형 잡힌 서술을 보여주고 있다. 스웨덴 왕세자비로서 스톡홀름에 갔다가 그녀가 "왕실의 격에 맞지 않는다"고 여긴 왕비와의 반목 때문에 이내 궁정을 뛰쳐나오는 대목은 현실적이었고 인간적이었으며 또한 드라마틱했다. 이후 오랫동안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서 정략결혼 등의 정치적인 이야기들과 맞물려 감정의 줄타기를 하는 토막들은 가끔 그녀가 발 딛고 서 있는 프랑스 정세의 급변을 잊게 할 정도로 생생했다.
물론 이 소설은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가기까지의 세계정세(특히 프랑스)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역사소설의 본분에 충실하다. 데지레가 읽는 신문은 그녀가 사는 시대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전달해 주고, 전세가 뒤집힐 때마다 그녀의 집으로 도망쳐 오거나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보나파르트 가 친척들과 애증의 연적 조세핀 황후 등이 데지레와 맺는 관계에 대한 묘사는 화려한 볼거리뿐만 아니라 당시의 상류층, 그리고 정치인들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상류 계급이 모이는 연회를 통해 당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부터 파리 시내의 유행까지 짐작할 수 있고, 그러한 소재들 간에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어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큼 간략할지언정 허술하게 쓰인 부분이 없다.
많은 역사소설은 "역사의 주인"인 남자들의 욕망에 휩쓸려 가련하거나 또는 호화로운 희생양이 된 여성들의 모습을 즐겨 다루었다. 예외적으로 스스로 권력을 행사한 여성도 있었고 그러한 흥미로운 여성들을 다룬 소설도 존재는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이 소설은 나름 다른 영역에 놓여 있다. 데지레는 주역의 자리에 있는 여성이 아니었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자들의 욕망 안에 놓여 있지도 않은 특수한 위치의 여성이었다. 실제의 그녀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역사의 격동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그 안에 얼결에 휩쓸려 버리지 않고, 마냥 감상에 젖지도 않고(그녀는 나폴레옹과 장시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으므로 결심만 하면 전혀 다른 서술도 가능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 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왕조를 남기기를 원한다"면서 아들을 황제나 왕의 딸이 아닌 조세핀의 손녀와 결혼시켰다는 그녀의 후손들은 지금도 베르나도트 왕조로서 스웨덴의 왕실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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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프레님의 블로그에 있는 실제 베르나도트 왕조의 시조 칼 14세와 왕비 데지레의 초상화. 그 후손들의 사진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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