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명동 씨너스에서 관람하고 왔다. 친구들과 맛있는 밥 먹고 즐겁게 떠들다 널찍한 영화관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와서 몸은 피곤하지만 즐거웠음. 무엇보다 명동 씨너스 웬 공사중인 건물에 있는 것치고는 훌륭하잖아! 그 널찍한 의자라니ㅠㅠ 같은 씨너스인데 서울대점은 뭥미? 뭥미?ㅠㅠ 명동까지 와서 굳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은 없는 것인지 영화관 안은 명동 내 최저의 인구밀도를 자랑해 우리를 또 한 번 흡족하게 하였다.
중요한 영화감상은... 번호붙여
접습니다
1. 나탈리 포트만, 스칼렛 요한슨, 에릭 바나. 셋 다 좋아하는 배우고 두 자매 특히나 나탈리 포트만은 훌륭했다. 난 그녀가 그렇게 사악하게 생긴 줄 미처 몰랐다; 스칼렛 요한슨과 둘이서 야심 많은 언니와 착해빠진 여동생을 멋지게 연기했다. 그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괜찮았다.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뭐 어쩌리;; 그런 데 트집잡다간 벌받을거야.
다만 문제는 에릭 바나... 에릭 바나가 멋진 것과는 별도로, 도저히 그가 헨리 8세로 보이지 않았다. 나름 막 부풀린 옷도 입고 이래저래 헨리스럽게 꾸미려고 한 것은 같은데 그다지 영국 왕 헨리다운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물론 초상화 들이대며 이대로 해! 라고 우길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일말의 헨리스러움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긴 [튜더스]의 스틸샷을 보고도 "뭥미 저게 헨리임?!" 하고 외치긴 했지만 그래도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쪽이 더 헨리스럽달까;; 헨리만 나오면 몰입이 되지 않았다. 에릭 바나를 보고서도 불평이나 하고 있다니 이건 케이트 블란쳇의 가히 사기에 가까운 엘리자베스를 보고 나니 눈이 높아진 탓일까.
2. 의상은 아름답고 섬세하게 신경 쓴 티가 군데군데 엿보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의 눈을 확 잡아끄는 힘이 없었다. 나탈리 포트만이 프랑스에서 돌아왔을 때 입고 나왔던 강렬한 단색의 드레스가 그나마 눈을 끄는 역할을 했지만 딱 그 정도. 예쁘지만 고만고만하니 눈에 안 드는 드레스들 사이에서 차라리 인상에 깊게 남은 건 로치포드에서 언니를 구하기 위해 돌아온 메리가 입은 시골풍 자수 드레스일 정도다. (이외 드레스는 아니지만 메리의 나이트 가운의 뒷모습이 예쁘긴 했다.) 남자들의 의상이야 더 할 말도 없다. 에릭 바나를 언뜻 미식축구선수만큼이나 어색해 보이게 만들었던 스페인풍 의상도 전혀 특출난 점이 없었고, 조지 불린의 옷이 좀 신경썼나 싶게 목께가 나풀거렸지만 역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는 실패했다. 이 점도 역시 [골든 에이지]에 완패.
3. 계속 [골든 에이지]와 비교해서 미안한데ㅠㅠ 대사에서도 완패. 물론 골든에이지도 그다지 높게 평가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중간중간에 훌륭하다고까지는 못해도 재치있는 대사와 행동들이 끼워넣어져 있었다. 사실 사극은 옷빨과 대사빨로 버텨야 하는 것 아닌가. [천일의 스캔들]에서 그럴듯한 대사라면 명백한 조연인 캐서린 왕비(완소)의 대사들 정도. 프랑스에서 돌아온 앤이 자신이 변했음을 인식시키며 헨리를 휘어잡기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무엇보다 대사가 큰 힘을 발휘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 말에 왜 넘어가나?" 싶을 정도로 허약한 대사빨을 보여주었다. 나탈리 포트만이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소용없음... 대사빨들이 허약하니 헨리는 완전히 바보가 되어버리고ㅠㅠ 자 이제 그대를 가질 수 있겠지? 있겠지? 있겠지? ㅠㅠㅠㅠ 에릭 바나가 바보연기를 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ㅠㅠ
4. 이건 영화의 완성도보다는 취향과 관련된 문제인데, 좁은 틈으로 방안을 훔쳐보는 카메라 앵글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작은 방들과 얽힌 복도 너머로 음모가 넘나드는 궁정을 표현하기에 그보다 적절한 앵글은 없을 것이다. "누가 훔쳐보고 있는가"에 대한 암시도 웬만큼은 있는 것 같고...(원작 이야기를 대충 들으니 은근히 특정 인물의 시선을 의도한 듯도?) 그러나 아다시피 [천일의 스캔들]이 다루는 음모란 것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고, 훔쳐보는 앵글도 예쁘게 찍힌 건 한 절반 정도인 것 같더라. 나야 취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겠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궁전 성곽 드레스 시녀 좁은 복도 높은 천장 이런 것들에 조건 없이 광분하는 내가 선뜻 하악하지 못할 정도니 객관적으로는 역시 좀....
5. 이래저래 불평만 늘어놓았으나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나 뿐 아니라 다들 앤에 몰입해서 손바닥에 힘 주고 영화 보신 듯... 영화 내내 관객들이 다 비슷비슷한 반응을 보이다가 유산한 앤이 조지에게 도움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사방에서 "...하아 미치겠다..." 란 목소리가 솔솔 피어올랐음. 왠지 다들 캐 감정이입한 분위기?
+ 아참 베드신 기대하신 분은 걍 튜더스 보시라능(...) 에릭 바나가 셔츠 벗어던지는 장면에서는 "흡" 하였지만 그 다음은 이뭥미 스칼렛 요한슨 가슴선도 안 나와요... 앤이 은근히 가슴골을 들이밀며 왕을 유혹하는 장면에서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음. 가슴으로 메리를 이기려 하다니 절대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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